Review

영화감독과의 대화를 통해 본 신대엽의 그림세계

토크 진행자: 영화감독 조창호

(2019. 5. 25)

이즈음 세계정세에서 가장 이슈가 되고 있는 문재인, 트럼프, 김정은 세 사람의 인물화 중간에 특이하게 조선시대 진적 초상화를 모사한 작품 두 점이 걸려 있다. 이미 존재하는 작품을 굳이 모사한 이유가?

공부를 위해서다. 지금껏 공부를 한다는 자세로 작품에 임해왔는데, 작년(2018)에 춘천 의병초상화 19점을 의뢰받고 작업을 하면서 조선시대의 초상화를 공들여서 모사해 본적이 없다는 사실을 알았다. 이번 전시회를 준비하면서 제대로 한번 해보자는 생각을 했는데, 그동안 눈여겨보아왔던 김이안과 윤급의 초상화 두 점을 선택했다. 옛 초상화는 인물 자체는 물론이고 의복과 부착물에 대한 묘사도 치밀하다. 함께 전시한 현실의 세 인물화에 이번 공부가 많이 반영되어 있다.

초상화에 여백이 많이 보인다. 영화의 프레임과 비교하면 인물이 화면의 정중앙에 배치돼 있고 위쪽으로 비어있는 부분이 지나치게 넓은 느낌이다.

인물을 화면의 1/3 지점에 위치하는 것은 조선시대 초상화를 따랐다. 내가 모사한 두 초상화의 진적에는 화제가 씌어 있지 않았지만, 저렇게 널따란 공간에는 화제 등이 쓰여 있는 게 보통이다.

〈춘주팔괴〉 와 〈그의 잠속에는〉 은 큰 작품임에도 묘사의 디테일이 상당하다. 묘사도 그렇겠지만, 화면에 여러 형태의 인물과 기물들을 배치하는 일도 쉽지 않을 것 같은데?

사실 〈그의 잠속에 나오는〉 은 한민족의 역사성이라는 주제가 정해져 있는 기획전에 맞추어 그린 작품이어서 사실 원래 내 작업 스타일이라고 보기는 힘들다.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그의 잠속에 나오는〉 은 잊혀져가는 우리 미술문화에 대한 이야기가 담겨 있다. 이즈음 동양화를 보면 좋은 옛것들을 잘 활용하지 못하는 듯한 느낌이 든다. 우리 옛 작품들을 보면 세계에 내놓아도 손색이 없을 만큼 훌륭한 것이 많은데 그걸 이어내지 못하고 있다는 생각에서 작업을 해보았다. 제목에 ‘꿈’이라고 하지 않고 ‘잠’이라고 한 이유가 거기에 있다. 잠들어서 잊히고 있는 것을, 깨어나 되살리자는 뜻이었다.

작품을 구성하는 소재들은 - 안견의 〈몽유도원도〉 , 고분벽화, 백제 금동향로, 바이칼 호 인근에서 보았던 자작나무, 지금 살고 있는 집 정원의 오죽들 - 대부분 우리가 알만하거나 실재하는 것들이다. 그리고 그림 속 두꺼비는 달을 상징하고, 까마귀는 해를 상징한다. 시간과 역사를 그렇게 상징화했다. 옛것들을 한 화면에 모아보자고 구상을 한 뒤에 시각적으로 조화롭게 구성을 하며 작업을 하긴 했지만, 특별한 역사의식을 부여하려는 생각은 없었다.

작품의 크기가 상당하다. 알기로는, 현재의 ‘이은당’을 짓기 전에 한 작품인데, 예전 작업실은 이런 대작을 하기엔 비좁았다. 어떻게 작업을 했나?

이 그림이 지금의 작업실 ‘이은당’을 짓도록 만든 계기가 된 작품이다. 예전의 작업실은 좁아서 이런 작품들을 하려면 1미터 정도 크기로 접어서 일단 그리고, 다 그리면 말아놓고 또 1미터 정도 펴놓고 그리기를 반복했다. 〈그의 잠속에는〉 은 가로가 4미터인데, 그림을 완성해놓고도 전시장에 가서야 전체 그림을 한눈에 볼 수 있었다.

대작임에도 디테일이 아주 섬세하다. 세밀하게 그려진 각가지 무늬들을 보고 있으면 감탄을 하면서도 힘들겠구나, 하는 생각이 드는데?

사실 옛 문양들을 보고 그대로 모사하는 방식이라 생각만큼 어렵지는 않다. (웃음) 반복적인 패턴작업은 아무리 세밀하다고 해도 그다지 오래 걸리진 않는다. 작가들이 안 할뿐이지, 어려운 일은 아니다. 상대적으로 화면의 중앙에 있는 ‘잠자는 얼굴’의 표정을 만들어내는 작업이 훨씬 어렵다. 문양을 반복하는 작업은 오히려 재밌다. 단순노동인데, 비유하자면 밭에서 풀을 뽑는 것과 비슷하다. 작가의 입장에서 여러 소재들을 전체 화면에 하나하나 구성하고 집중하며 그려나가는 과정이 즐겁다.

화면 오른쪽에 있는 자작나무를 보고 있으면 나무들 사이사이에 산이 보이기도 하고 사라지기도 하는, 착시현상이 일어난다. 의도한 것인가?

자작나무가 원래 착시를 일으키는 경우가 많다. 일부러 의도한 것이 아니라, 그런 특징을 가진 소재를 택한 것이다.

묘사를 해나가다가 이 정도면 됐구나, 하는 지점이 있을 것 같은데 어느 때인가?

〈그의 잠속에는〉 은 솔직히 미완성이다. 〈춘주팔괴〉 는 완성되었다고 생각되는 작품이다. 〈춘주팔괴〉 는 구상과 스케치를 거듭하고 난 뒤 작업을 하기까지 3년이 걸렸다. 쉽게 시작하지 못했다. 이번 전시에 맞추어서 비로소 완성을 했다. 좁은 작업실에서 구상을 시작한 후 3년여 동안 계속 생각 속에서 소품들을 배치하다가 그리기 시작했는데, 순조롭게 진행되었다.

묘사의 완성을 이룬 작품들을 든다면?

연전에 친구랑 술을 마시다가 5년 뒤의 계획에 대해 얘기를 한 적이 있었다. 그때 내가 “고려불화 급의 작품을 그려 보겠다,”고 했었다. 그날 이후 고려불화에 대한 강박이 생겼다. (웃음) 부처나 관세음보살이 몸에 두르고 있는 투명한 천의 질감까지 그대로 느껴지는 디테일한 표현이 특징인 고려불화는 동양화로서 해낼 수 있는 묘사의 한 궁극을 이룬 세계적인 그림이다. 당송시대의 그림들, 16세기 북유럽 르네상스를 대표하는 브뤼겔의 작품들, 북송의 장택단이 그린 가로 26미터짜리 〈청명상하도(淸明上河圖)〉 풍의 그림들도 그려보고 싶다.

소재들은 실재하지만 그림 자체는 상상의 산물이다. 실제 묘사를 할 때, 상상한 것이 그려지는 싱크로율, 만족도는 어느 정도인가?

〈춘주팔괴〉 는 처음에 의도했던 것들이 형상화되었고 생각한다. 하지만 “잘 그렸다,”고 말하기는 힘들다. 그냥 생각한 대로 끝까지 그려냈다는 뜻이다.

〈춘주팔괴〉 는 소설에 비유하자면, 소설 안에 또 다른 소설이 들어 있는, 이른바 액자형태의 구조를 갖고 있다. 제대로 보았나?

그렇다. 〈춘주팔괴〉 는 청나라 건륭시대(1661-1722)에 양주 지역에서 활동한 개성 넘치는 여덟 명의 화가를 일컫는 ‘양주팔괴(楊洲八怪)’에 빗대어 춘천에서 활동하고 있는 여덟 명의 화가들을 내 기준에서 골라 화폭에 담았는데, 그러다 보니 화가 한 사람 한 사람과 관련이 있는 소품들을 인물의 주변에 배치하는 구성이다. 액자형태의 구조를 물리적으로 가장 잘 확인할 수 있는 게 그림 속의 나 자신과 내가 보고 있는 족자 그림일 것이다.

이번 전시회 작품들 중에서 〈그 사람의 의자〉 가 개인적으로 특별했다. 아련해지는 감정이 느껴지기도 했고, 뭔가 스토리가 있는 것 같은 느낌도 받았다. 뒷모습을 보이고 있는 인물이라 그랬는지, 그가 살아온 인생이 보이는 것 같기도 하고, 의자에 살짝 묻어 있는 물감, 맨발 등에서 작가와 닮지는 않았지만 작가와 떼어서 생각하기 힘들었다. 단순화시키긴 했지만 창문이 등장하는 것도 특별했고, 빛을 받는 앞부분과 뒷부분의 음영 차이가 없는 것도 신기했다. 인물의 위치, 각도, 아래쪽의 텅 빈 공간도 보통 볼 수 있는 그림들의 구도와 뭔가 달라 보였는데, 어떻게 감상해야 하나?

작가들의 막막한 현실을 생각했을 때 의자가 떠올랐다. 선배화가의 작업실에서 그림 속에 나오는 의자와 비슷한 걸 보았었는데 그게 늘 뇌리에 남아 있었다. 의자에 앉은 사람은 당연히 화가다. 우측상단의 네모난 하얀 부분은 창문으로 볼 수도 있지만, 캔버스일 수도 있다. 앞을 내다본다는 점에서 창과 캔버스는 일정부분 의미를 공유하기도 하지만, 아무래도 그림 속 인물의 팔이 닿는 거리나 뭔가 막혀 있는 것 같은 느낌으로 봐서는 캔버스가 더 맞을 것 같다.

이 그림은 화면 한가운데에 의자를 먼저 데생한 뒤에 거기에 어울리는 사람을 그려 넣었다. 인물은 화면에 맞추어 조절한 것이어서 비례를 정확히 옮기진 않았다. 그리고 그림에서 얻어가는 스토리는 감상자의 몫이다.

그래도 그림에 반영된 작가의 의도를 파악하고 싶은 게 본능이다. 개인적으로 영화를 찍으며 경험한 것을 예로 든다면, 와인 잔에다 농약을 타서 자살하는 장면을 찍는데 와인 잔이 계속 마음에 들지 않았다. 잔을 파는 가게를 모두 뒤졌는데도 결국 흡족하지가 않았는데, 아마도 어떤 잔이었어도 그러지 않았을까 싶다.

선 하나를 긋는 데도 분명히 과정이 있다. 하지만 “왜 그렇게 한 건가?”라는 질문에는 명료하게 대답할 수가 없다. 앞서 거론한 창문과 빛, 음영 문제와 결부해서 말하자면, 지금은 동양화도 서양화처럼 색채의 변화나 명암을 표현하지만, 대개의 동양화는 광원에 구애받지 않고 그리는 대상의 본질에 집중한다. 여기에 대해 “왜 이렇게 하는가?”라고 묻는다면, 굳이 할 수 있는 대답은 “대상 자체에 대한 표현,” 하나뿐인데, 이 말엔 작가의 주관적인 생각이나 의도, 철학 등이 담겨 있지 않다. 인물의 의복이나 자세, 표정, 주변의 소품 배치 등을 선택하고 결정하는 데는 분명히 의도적인 과정을 거치지만 그렇다고 그런 것들이 꼭 어떤 상징이나 의미가 있는 것은 아니고, 그저 이곳에 이런 것들이 있으면 좋을 것 같다, 이 사람은 이런 표정이면 좋을 듯하다, 라는 느낌이 작용한 것이다.

그림 속 인물을 보면 위에서 내려다보아야 가능한 구도다. 하지만 배경은 평면적인 선과 면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런 왜곡은 어떻게 이해해야 하나?

동양화의 여러 특징 중 하나다. 가령, 접시 같은 기물을 그릴 때, 위는 둥글게 그리고 바닥과 닿은 면은 직선으로 표현하는 경우가 많다. 대상을 다시점(多視點)으로 바라보고, 여러 개의 시점이 대상 하나에 모두 담기는 방식인데, 바닥은 평평하니까 직선으로 그리는 것은 시각적이기보다 언어적, 관념적이다.

〈그 사람의 의자〉 를 보면, 배경의 왼쪽 면은 수직으로 검정색이 칠해져 있고, 우측 상단에 네모난 흰색 면, 그리고 그 면과 평행하게 직선으로 칠해져 있다. 그래서인지 안과 밖의 구분, 높낮이와 깊이에 있어서 감상자를 헛갈리게 만든다. 캔버스의 평면성을 드러나게 하려는 의도는 아니었는가?

처음부터 의도한 것은 아니다. 검정색 먹 부분은 그림을 모두 그리고 나서 구도가 맘에 들지 않아서 칠했다. 완성된 그림은 수많은 변심의 결과물이다. (웃음) 의자의 크기나 배치, 캔버스 혹은 창의 크기나 배치 등등, 모두 그렇다. 여기가 좋을까, 좀 더 내려서 그릴까, 같은 과정은 분명히 있지만, 의도라기보다는 느낌이라고 하는 게 옳다. 개인적으로 그림을 그릴 때 신경을 쓰는 것은 그림의 전체적인 분위기보다는 디테일한 묘사다. 전체적인 분위기는 의도해서 만들어나가기보다는 매우 자연스럽게 형성된다고 본다.

작가는 작가의 의도를 의도적으로 배제하고 있지만 (웃음) 감상자의 입장에서 〈그 사람의 의자〉 를 보면 궁금한 게 많다. 창문 혹은 캔버스의 위치를 반대편으로 돌리면 어떤 느낌일까, 맨발인 인물에게 신발을 신기면 어떻게 될까, 옷을 밝은 색으로 바꾸면 어떤 느낌일까 등등, 의자 외의 소품들을 넣었다 뺐다 상상하면서 감상하다 보면 실제로 그렇게 그려진 그림들을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똑같은 구도를 가진 서로 다른 그림들로만 전시회를 열어보면 어떨까도 상상해봤는데, 작가의 생각은?

작년부터 나는 “앞으로는 평생 인물만 그리겠다,”고 말하고 다닌다. 의지가 별로 굳지 못해서 뭔가 해야겠다 싶으면 말부터 자꾸 떠벌인다. 그래야 지킬 수 있을 것 같아서다. (웃음) 진짜 옛날 그림, 그러니까 고분벽화부터 따져들어가 보면 가장 기본적인 주제이자 소재가 인물이다. 그림의 태생은 인물에 있었다. 중국 그림의 시원에 해당하는 고개지의 작품에도 풍경은 인물의 배경이나 장식적인 의미 밖에 없다. 사람의 얼굴, 사람의 형상을 그린다는 것이 그림의 근본이란 생각을 했던 것 같다. 2천년 이상 지나간 지금에 살면서 인물에 집착하는 것이 지나치게 예스럽게 느껴지겠지만, 내게는 오히려 시간을 거슬러 올라 ‘그림의 근본’에 닿으려는 욕망이 강하다.

치밀하게 묘사된 그림을 보면 그 작가의 비범함, 천재성 등을 느끼게 된다. 본인에게도 해당되는 것 같지 않나?

나 자신을 두고 그런 얘기를 하는 건 우스꽝스런 일이다. (웃음) 천재적인 작가들의 그림은 다르다. 다만, 예술이라는 것이 천재들이나 하는 건데 힘겹게나마 나도 그런 걸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면 뿌듯해진다. 가령, 논란이 있긴 하지만, 동양화에서 얘기하는 기운생동(氣韻生動)은 천재들에게 해당되는 이야기다. 힘이 좀 빠지는 얘기지만, 타고나야 한다는 것이다. 나같이 천재가 아닌 작가는 엄청난 노력을 통해 아주 조그만 예술적 성취를 이룬다. 만권의 책을 읽고, 밤새워 공부하는 노력을 기울인다면 겨우 흉내를 낼 수 있을 것이다. 죽기 전에 천재들의 작업에 근접이나마 할 수 있는 작품 한 점을 남기는 것 - 여기에 희망을 걸고 작업하고 있다.

자신이 천재가 아니구나, 라는 생각을 한 것이 언제였나?

처음 느낀 건 미술학과 대학생 때였다. 모델을 두고 데생을 하고 있었는데 똑같이 그려지지 않아서 고민이 많았다. 선생들과 동기들이 “왜 똑같이 그려야 하나?”라고 되물었는데, 나는 당황해서 우물쭈물했었다. 내게 문제는 똑같이 그려야 하는 이유가 아니라, 똑같이 그려지지 않는다는 것 자체였다. 똑같이 그리는 건 그림에 있어서 일종의 기본적인 자질이었다. 그게 안 된다면 그림을 그리지 않는 게 맞다고 생각했었다. 그건 마치 음악을 하는 사람이 ‘절대음감’을 갖추는 것과 마찬가지였다. 노래를 잘 부르고 싶은데 음정을 올바르게 내지 못하는 것처럼, 의도한대로 그려지지 않는 것은 여전히 내게 문제다.

대상을 그대로 그리는 것과 달리, 예를 들어 에곤 쉴레처럼 대상을 변형하거나 왜곡하는 방식으로는 그리고 싶지 않은 건가?

대상을 그대로 그리지 않는 방식에 따라 개성이 생기는 건 사실이다. ‘파필(破筆)’같은 것도 그런 건데, 지금보다 더 나이가 들면 할 수도 있을 것 같지만, 지금의 나로선 개성이기보다는 감상자를 현혹하는 것이란 생각이 지배적이다. 그런 그림들은 ‘당신도 모르고 나도 모르는, 그저 그럴 듯해 보일 뿐인 그림’이란 생각에서 잘 벗어나지지 않는다. 사실, 왜곡이라는 게 일부러 대상을 변형시키는 것보다는 느낌에 따라 자연스럽게 변형하는 것 정도는 얼마든 좋은 거라고 생각된다. 하지만 천성이 그런 것과 맞지를 않아 시도를 하지 않지만 노력은 하고 있다. 관절이 뒤로 꺾이고 오른손만 두 개를 아무렇지 않게 그려놓는 작가가 부럽다. (웃음) 하지만 대상을 그대로 재현하는 것에도 이젠 그다지 흥미가 없다. 사진처럼 데생에 집착하는 건 그만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