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ights Over the House

환몽(幻夢)처럼, 아늑하고 아득하고 그리운...

'차가 잘 다니지 않는 곳에 구멍가게를 내다' 그림의 제목이다. 제목이 아니었으면, 저 옛날 「매화초옥도」에 그려진 초가집처럼 은자연한 풍경이라고 여겼을 법하다. '구멍가게'이니 의당 손님이 나들어야 할 텐데 '차가 잘 다니지 않는다'니 사람의 왕래가 적고 가게의 목적인 장사가 잘 될 턱이 없다. 그런데도 구멍가게 혹은 집을 둘러싼 초목은 푸르고, 나무는 점점이 흰 꽃을 피우고 의자들은 비어있으나 흐트러짐 없이 단정하다. '내다'에서 느껴지는 자의성처럼, 마치 일부러 그렇게 인적 드문 곳에 가게를 낸 것처럼도 여겨진다. 가게라는 세상과의 소통창구를 열어둔 채로, 자연 속에 홀로 의연하다. 마치 그림이 안개 같은 입자로 "그래도 괜찮아."라고, 귓가에 속삭이는 것만 같다.

'산을 지나가는 자동차' 또 다른 그림의 제목이다. 역시 제목이 아니었으면, 비구상 추상화라고 여겼을 법한 그림이다. 그런데 어둔 밤중에 홀로 서서 막연한 기다림으로 저 멀리 '산을 지나가는 자동차'를 한 번이라도 본 적이 있는 사람은 알 것이다. 깜깜한 어둠 속에서 별빛 같은 점으로 나타난 자동차가 헤드라이트 불빛을 비추며 어떻게 선으로 사라져가는 지를. 그 불빛에 어떻게 산이 능선을 내보이며 제 형체를 잠깐 드러냈다 다시 컴컴한 어둠 속에 묻히는 지를. 한 순간 설렘으로 환해진 마음이 어떻게 가뭇없이 그리움으로 어둑해지는 지를... 산도, 자동차도 보이지 않지만, 그 설렘과 그리움 사이의 어느 지점을 자동차는 지나고 있는 중이다. 그림을 보는 동안 "나의 어둠을 당신도 아는구나."라고 속엣 말로 되뇌게 된다.

낮과 밤으로 나뉘어 그려진 '숲 속의 집'을 비롯해 '물과 풀' '여량철교' 등의 제목을 한 다른 그림들도, 같은 화법(畫法) 또는 화법(話法)으로 말을 걸어온다. 말을 걸어옴으로써, 그림 앞에 오래 서 있게 한다. 이 그림들을 그린 화가 서숙희는 작가노트에 이렇게 썼다. "내가 그리는 그림이 나를 위로하기 위한 노력이기는 하지만, 다른 사람의 마음에도 가 닿을 수 있기를 바란다."라고. 또 이 그림들에 대해 소설가 하창수는 이렇게 썼다. "위안이 일방적인 획득이 아니라 주고받음이라는 것을, 이것이 예술의 소중한 덕목이라는 것을 그녀의 그림들은 조용히 읊조려준다." 그리고 덧붙인다. "짙고 깊게 화폭을 파고들어간 안개는 강의 흐름을 감추고, 자잘하게 절개한 상처와도 같은 무수한 세필자국을 감추고, 아득한 환몽(幻夢)의 세계로 우리를 이끌어간다. 아늑하고, 아득하고, 그립다." 글의 결미처럼, 화가 서숙희의 네 번째 개인전인 『집과 밤』의 그림들은, 아늑하고 아득하고 그리고 그립다.

-류가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