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ing Memories

이별을 묻다

장안長安 패교覇橋는 늘 떠나는 이를 전송하는 한漢나라 사람들로 가득했다. 그들은 버들가지를 꺾어 떠나는 이에게 건네주며 헤어짐을 아쉬워했는데, ‘절류折柳’는 그때 생긴 말이다. 스산하게 흩날리는 낙엽들 속에 걸린 이담의 그림들은 패교 위의 송인送人이 별리別離의 증표로 건네주던 하나씩의 버들가지다. 2008년 가을, 우리는 그녀가 어떻게 ‘사라지는 것들’과 이별하는지, 그리고 그녀가 내쉬는 낮은 한숨이 어떻게 따뜻한 위로로 바뀌는지를 목격한다.

어떤 이는 이담의 그림에서 몇 줄의 시를 읽고, 어떤 이는 조곤조곤 긴 사설을 듣는다. 어떤 이는 그녀의 그림 앞에서 쓸쓸히 가슴을 쓸어내리고, 어떤 이는 가만히 입가에 미소를 머금는다. 이 상반된 반응이야말로 서숙희라는 화가의 매력이거니와, 그녀를 아는 사람은 다 아는, 뭐 하나 똑 부러지는 게 없는 그녀 특유의 ‘머뭇거림’이 그 이유다. 그런 그녀야말로 ‘사라지는 것들’에 대해 얘기할 수 있는, 바로 그 사람이지 않을까.

눈에 선하다. 판자가 성기게 얹힌 우두동 길갓집 뒷길을 서성이는 그녀. 소양강 건너 지인의 아파트 베란다에서 봉의산 비탈에 늘어선 낡은 슬레이트 지붕들을 물끄러미 바라보는 그녀. 화선지 위에 안개를 놓아 멀지 않아 우리와 이별하게 될 ‘사라지는 것들’을 하나씩 지워내는 그녀. 거뭇하게, 푸릇하게 번져 오르는 안개 속에 드러나는 ‘사라지는 것들’의 실상은 ‘잘 감추어서 잘 드러내는’ 장로은현藏露隱顯의 묘법描法에 부합한다. 예전에는 보이지 않던 ‘색色’이 ‘사라지는 것들’과 함께 드러난 것이 이채롭다.

하지만 그녀의 색은 채색의 색이 아니다. 기왕의 담묵淡墨을 거스르지 않는 그녀의 담채淡彩는 마치 먼 훗날 아스라이 스러져갈 기억의 창고 안, 빗겨 떨어지는 햇살에 포르르 일어서는 먼지와도 같다. 혹은 “이제 아무 것도 없어요,” 하고 확인시켜줄 때의 그 쓸쓸함과도 같다. 농염보다 더 짙은 그녀의 엷은 색은 이별의 까닭을 우리에게 묻고[問], 그 아쉬움을 가슴 깊은 곳에 묻는다[埋]. 사라지는 것은 아쉬운 만큼, 꼭 그만큼, 아름답다.

- 하창수(소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