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cords of Things

감추듯 드러내듯…세모시 같은 명상적 화면

“세모시 옥색 치마….” 통기성 좋고 촉감 좋은 세모시 옷을 입고 그네까지 탄다는 것은 쾌의 극치가 아닐 수 없다. 곱기도 하지만 ‘감춤’과 ‘드러냄’의 절묘함과 신비함이 숨을 멎게 할 정도다. 세계의 호사가들이 탐낼 우아하고 고상한 물성, 하지만 이것은 거저 나온 게 아니다.

태모시를 가늘게 째기 위해 앞니를 많이 쓰다 보니 이에 골이 파여, ‘이골이 난다’고 했다. 한 필의 실을 잣는 데는 침을 서 말 쏟아야 한다. 곱디고운 세모시는 이처럼 땀과 정성의 집약체다. 그림에서도 잔잔한 명상적 화면의 이면에 치열한 몸짓들이 집적되는 경우가 있다.

서숙희의 화면은 제작 과정뿐만 아니라 감각도 세모시와 흡사하다. 아크릴 표면에 씨와 날의 획을 침으로 무수히 긁어낸 후, 홈에 착색한 결과가 직조물 같다.

행위는 그리기와 지우기의 경계에 있다. 무언가를 가리고 또 드러내는 짜임의 틈으로 상상력이 바람처럼 넘나든다.

-이재언 미술평론가